그동안 만들었던 키보드들은 직각으로 키들이 배치된 Ortholinear 방식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무척 어색하지만,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이라 Ortholinear에 적응하면 평범한 Stagger 방식의 키보드를 사용하면 오타가 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재료들을 이용해 63키 키보드를 하나 만들었봤습니다.
Case
키보드 케이스와 팜레스트를 결합해 만든 제품입니다. 팜레스트의 길이가 좁아보이지만, 손목을 걸치는 용도로는 충분합니다. 더 길었으면 가로세로 길이의 균형상 디자인이 별로였을 것입니다.
판매자의 사진에는 상판과 합판이 접합된 것으로 나오는데, 제가 받은 케이스 2개 모두 원목 하나를 가공해 만든 제품입니다. 전체적으로 무광 바니쉬로 마감해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내부의 PCB 접합부분 Standoff 설치위치와 USB 포트, 리셋홀 위치의 가공도 정확합니다.
YMDK는 키보드 부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동안 키캡 세트 몇개와 케이스를 주문해본 경험으로는, 키캡 한개를 추가로 더 구입하고 싶다는 요구에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잘 응해주고, 발송도 결제일 당일에 바로 해주기 때문에 주문한 제품들 중에서 가장 빨리 받을 수 있었습니다.
PCB
KPRepublic BM60 RGB Hot Swappable
KPRepublic에서는 그동안 BM43a, JJ50 등을 구입해 봤는데, 제품의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이번 BM60의 RGB는 Anne Pro 2의 그것만큼 화려하고, QMK 펌웨어에 들어있는 RGB 패턴들도 아주 다양합니다.
한가지 특징은, 포커배열 키보드의 너비를 유지하면서 방향키를 넣느라 슬래쉬(/)키와 우측 시프트키의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우측 시프트키는 흔히 Caps Lock에 쓰이는 1.75u 길이의 키캡을 하나 더 구해서 끼우면 됩니다. 포커배열 케이스는 선택의 폭이 아주 넓기 때문에, 배열을 약간 바꾼대신 넓은 케이스 선택권과 방향키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동안 납땜방식 PCB만 사용하다 Hot Swappable은 처음 써봤는데, 납땜에 드는 시간이 없으니까 확실히 조립이 간편합니다. 언제든지 여분의 스위치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Switches
저는 걸림없이 부드럽게 키를 누를 수 있는 리니어 스위치를 좋아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힘이 센 손가락과 약한 손가락으로 누르는 키들의 압력을 달리했습니다. 손가락마다 서로 길이가 다르고, 누르는 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리니어 스위치만 쓰다보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어서, 방향키와 쌍을 이루는 괄호/브라켓 키 등은 갈축 스위치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총 3 종류의 스위치가 사용되었고, 조만간 검지와 중지는 보다 강력한 반발력을 갖는 스프링로 교체할 예정입니다.
- Gateron Silent Red (linear 45g) : 검지, 중지, 약지로 누르는 기본자리와 아랫줄
- Gateron Silent Clear (linear 35g) : 약지로 누르는 모든 키와 맨 윗줄
- Gateron Silent Brown (tactile 55g) : 괄호키, 방향키, 스페이스바 등
Gateron 스위치는 중심축과 전극 2개 외에 양 옆으로 플라스틱 돌기가 2개 더 있어, 총 5개의 돌기 덕분에 Plate 없이 PCB에 단단하고 가지런하게 꼽을 수 있습니다. Plate도 없는데다 Silent 스위치 스템의 실리콘 덕분에 키를 누를 때 손가락이 바닥을 때리는 충격이 많이 줄어든것 같습니다.
Stabilizer
체리 순정이라고 판매되는 제품인데, 과거 알리에서 구입했던 다른 제품들에 비해서 구조가 약간 다르고 더 견고한것 같습니다. Super Lube 구리스로 윤활했습니다.
Key Caps
검정과 회색이 사용된 사진은 PBT 재질에 Dolce 색상의 OEM 프로파일 무각 키캡을 꼽은 것이고, 갈색 키캡은 흰색의 제품을 같은 판매자로부터 구입해 Rit Dye Tint Dark Brown 파우더로 직접 염색한 것입니다.
키캡 하단의 사출자국이 깔끔하지 않은 정도의 단점은 있지만, 어차피 키보드에 꼽아놓으면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상관 없습니다. 가성비로 따지면 이만한 키캡이 없을 겁니다.
Firmware, Keymap
https://config.qmk.fm 접속 후 PCB를 고르면 키보드 레이아웃과 기본 키맵을 보여줍니다. 원하는 키맵으로 바꾸고 Compile하면 .hex 확장자의 펌웨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펌웨어는 컴파일/플래싱 툴을 직접 설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매크로나 상세한 설정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QMK Toolkit을 사용하는게 편리합니다.
참고로, Keebio Iris와 같이 VIA Configurator를 지원하는 기판을 구입하면 컴파일/플래싱 없이 키맵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VIA Configurator는 Ctrl/Alt/Shift 등이 복합적으로 중첩된 키들은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초보적인 수준의 키맵을 사용하는 동안은 괜찮지만, 점차적으로 키맵의 복잡도가 올라가면 VIA Configurator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따라서, VIA Configurator의 지원여부를 PCB 선택의 최우선 기준으로 둘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
마치며
기계식 키보드 제작의 재미는 부품을 선정하는 과정과, 기나긴 배송기간을 기다리며 QMK 펌웨어에 키맵을 준비하는 기간인것 같습니다. 막상 부품들이 도착하면 검수부터 조립, 펌웨어 플래싱까지 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다음 키보드가 배송중인 상태입니다. 다음 키보드는 Planck 배열의 BM40입니다. Drop에서 진행한 Planck의 배송일이 한달 이상 지연되어, 취소하고 BM40으로 갈아탔습니다. 빨리 도착하면 좋겠습니다.